LIFE STYLE 가장 가까운 유럽 항만도시, 블라디보스톡
페이지 정보
본문
2014년 1월 한˙러 간 비자면제협정 발효 이후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의 블라디보스톡 노선 홍보 문구이다. 실질적으로 비행시간 1시간 반이면 유럽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조그만 항만도시를 만날 수 있었고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는 우리 국민들이 자주 방문하던 해외 관광지 중의 하나였다. 블라디보스톡은 2021년 기준 도시 면적 331.1㎢, 인구 61만 명으로 면적으로 부산시의 1/3, 인구로는 1/5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지정학·지경학적 관점에서는 중요한 역할이 예상되는 곳이다. 러시아 최남단의 부동항이자 부산항에서 연결된 해상화물이 대륙철도로 연결되는 복합물류거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향후 유럽과 아시아의 지름길인 북극항로의 중요 연계 항만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톡항 카페리 선박의 하역>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은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가기 힘든 곳이 되어 버린 곳이지만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많이 연계되어 있던 공간이다.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고 조선 말기 북간도로 불리며 우리 동포들이 살던 곳, 19세기 초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거점이자 우리 민족이 도시의 터를 일군 곳이기도 하다. 구한말부터 조선 유민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아무르만 연안의 개척리(現 해양 공원 일대)에 조선인들이 밀집해 거주하다 1911년 러시아 측이 콜레라를 이유로 시내 북쪽 언덕에 조선인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면서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촌을 이루었다. 대략적인 위치는 지금의 하바롭스카야 거리 일대로, 현재는 신한촌 기념비와 서울 거리란 이름의 작은 소로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분들은 한러 수교가 이루어졌던 1990년대부터 줄곧 이곳을 방문하고 의미를 새겼던 곳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한 연해주 땅은 이후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제2차 아편전쟁 이후 베이징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어부지리로 획득한 땅으로 한반도와 직접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를 얻게 되었고 중국은 이로 인해 동해로 나가는 출해권을 잃어버리게 된 아픔의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구권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2023년 5월 15일, 중국에게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사용권을 허가하면서 6월 1일부터 중국이 블라디보스톡항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정치, 안보적인 이유로 인해 중국의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화물은 가까운 동해를 이용하지 못하고 철도나 도로를 통해 1,000km 이상 떨어진 다롄항을 통해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전쟁 때문에 제제당해 경제적 위기가 오고 중국의 역할이 중요해지자 베이징조약 이후 163년 만에 항구를 쓰게 해준 것이다. 물론 본격적인 항만 이용은 제한되었으나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일부 화물들이 블라디보스톡, 보스토니치항을 이용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이라는 이름은 러시아 민족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이름이다. 러시아어로 ‘동방의 지배자’라는 의미로 부동항을 찾아 나선 러시아인들의 염원과 의지가 담긴 뜻이기도 하고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그들의 다수가 러시아로 망명하면서 만들어진 러시아 정교회에서 새로운 동로마제국의 중심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블라디보스톡의 도시 구조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현재 이스탄불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이 도시는 그런 의미에도 불구하고 2012년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전까지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시작점이자 군사도시 정도의 의미만 가지다가 그 이후 러시아 극동의 경제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2014년 한러 비자면제협정 이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기회를 기반으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을 극동지역 경제 중심지로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2015년부터 동방경제포럼을 발족시키고 항만을 중심으로 금융, 무역, 제조, 교육 등의 다양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도록 자유항 제도와 선도 개발구 등을 만들어 전 세계 투자자들을 유치하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지금의 전시 상황으로 인해 모든 상황이 중단되어 버렸지만, 한때 러시아의 아시아 경제거점이자 우리나라와 물류망으로 연결된 주요한 협력 파트너이기도 한 도시였다.
<블라디보스톡항 겨울: 동결된 바다를 건너는 시민들>
블라디보스톡은 항만 물류와 수산물 수입처로써 부산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였다. 원격으로 해운과 철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 왔고 러시아의 풍부한 수산물을 우리나라에 공급하는 기지 역할도 수행해 왔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부산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은 부산의 중요한 해외 경제거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해운과 대륙 물류를 연결시켜주는 기능과 후쿠시마 원전의 방류수 문제로 인해 두 가지 기능 모두 위축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럴수록 부산시는 블라디보스톡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과거 부산과 동일하게 항만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배후가 높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배후지 확장이 어려운 곳이다. 결국 현재 블라디보스톡항은 재개발을 통해 도시용지로 전환될 수 밖에 없고 새로운 입지에 신항을 건설하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 이미 코로나 팬데믹 이전 다수의 유럽과 싱가포르 개발자들이 블라디보스톡 항만 재개발에 대해 제안을 한 적이 있고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서 블라디보스톡 신항만 건설을 위한 제안을 러시아 당국에 건의한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결국 부산시가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 갈 수 밖에 없고 이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기업인들한테 큰 기회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부산시와 연결의 고리를 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입지하고 부산시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블라디보스톡의 입장에서는 부산시의 노하우가 가장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산은 블라디보스톡이 과거 부산이 만들어 온 노하우를 제대로 가지고 가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동절기 블라디보스톡항 전경>
당장은 국제정세로 인해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수록 부산시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톡과 같은 미래의 먹거리 보고들은 지속적인 관계 유지와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유럽이나 북미지역의 주요 선진 항만도시들의 벤치마킹을 통한 부산시의 발전만을 도모할 게 아니라 부산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블라디보스톡과 같은 전략적 거점 항만도시들에게 전수와 이식을 통해 상호 발전해 나가는 방법을 강구할 시점이다. 항상 위기는 기회를 동반하는 법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부산시는 블라디보스톡과의 연결고리를 이어나갈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