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해조류에 반한 유럽기업 - 해조류 불모지에서 산업을 만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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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 김, 파래, 다시마 등이 해조류다. 세상에 2만 7,000종이 있다 하나 우리가 식용으로 쓰거나 익히 아는 해조류는 15가지 안팎에 불과하다. 이런 해조류를 생산하는 절대 강자는 아시아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통계를 보면, 2019년에 3,580만 톤의 해조류가 생산됐다. 거의 대부분 양식산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에서 생산된 양이 97%를 차지한다. 중국이 세계 해조류 시장의 57%를 장악하고 있고, 인도네시아(27.81%), 한국(5.09%), 필리핀(4.2%)이 그 뒤를 잇는다.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21년에 198억 달러였으나 2028년에는 36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FAO는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해조류 시장이 3배 넘게 커졌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도 연간 두 자릿수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예측이다. 그 흔한 해조류가 귀한 몸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왔다.
노르웨이 르로이가 론칭한 해조류 브랜드 ⓒ르로이홈페이지(2023. 08. 15)
미래 식량에 대한 투자 증가
최근에 흥미 있는 일이 하나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불모지에 불과하던 유럽지역에서 해조류 붐이 일고 있어서다. 유럽연합(EU)이 해조류 양식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내로라하는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이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EU의 경우, 최근에 2030년까지 해조류를 연간 800만 톤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양식장을 대서양 연안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럽에서 생산되는 해조류의 총량은 3,000톤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이 산업에 쏟아붓는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할 만하다. 1898년에 설립된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글로벌 수산 식품회사 르로이(Leroy)는 지난해 해조류 전문 브랜드인 매르(maer, 천연의 때 묻지 않은 뜻의 노르웨이 말)를 론칭하면서 해조류를 대표 식품군으로 포함하였다. 시장의 움직임과 소비자의 반응을 미리 읽고 있는 것이다.
유럽이 해조류에 빠진 이유
유럽에서 해조류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한 사연이 있다.
해조류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맛과 풍미, 영양학적인 이점, 그리고 식용이나 활용이 편리하다는 점 등이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유럽 국가 대부분이 바다를 끼고 있어 해조류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이민자와 아시아 식당이 늘고 있는 점도 해조류 소비량이 많아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해조류 섭취가 늘어나는 것은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욱 커지고 있어서다. 해조류에는 일정한 수준의 영양소 함량은 물론 미네랄, 특히 칼슘, 철, 아연 및 요오드가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다이어트 건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비건 식료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양식 과정에서 육지와 달리 비료 등 화학제품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천연식품이라는 점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해조류의 재발견인 셈이다.
해조류로 만든 식품 ⓒ시모어푸드 홈페이지(2023. 08. 15)
해조류 식품 스타트업의 등장
해조류 시장이 커지자 2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다양한 해조류 식품이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다. 앞에서 밝힌 르로이 같은 글로벌 식품기업뿐만 아니라 기존 식품회사는 물론 스타트업까지 소비자 취향에 맞는 여러 가지 해조류 식품을 내놓고 있다. 영국의 비치푸드(Beachfood)는 해초 케첩 소스, 해초 퓌레, 해조류 시즈닝은 물론 해초 조비료 컬렉션 등 30여 종이 넘는 제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해조류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오픈하는 등 해조류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시모어푸드(Seamorefood)는 해조류 칩을 기본으로 해조류 베이컨과 해조류 파스타 등을 개발하여 소비자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독일 스타트업인 노르딕오션프루츠(Nordicoceanfruits)는 청정 노르웨이 연안에서 나는 100% 유기농 해조류를 기반으로 글루텐 프리 샐러드 등을 팔고 있다. 지금이 틈새시장에 머물던 해조류가 메인 시장에 진입하는 시점이다.
다양한 해조류 식품군 ⓒ비치푸드 및 노르딕오션푸르츠 홈페이지(2023. 08. 16)
해조류 양식 기업도 늘어난다.
둘째, 해조류를 양식하는 기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유럽연합의 대대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노스 시 파머스, 더 시위드 캠퍼니, 시위드 퍼 유럽 등이 해조류 공동 양식과 상품화에 적극적이다. 특히, 이 같은 기업들은 해조류 양식을 최근 글로벌 이슈로 등장한 탄소 감축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노스 시 파머스의 경우, 네덜란드 해상풍력 업체 등 100여 기업이 연합하여 해상풍력단지 등에 대단위 해조류 양식장을 설치하고 있다. 또 현재 유럽지역에서 해조류를 이용하여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대표적인 기업의 하나가 더 시위드 컴퍼니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아일랜드 서해안, 모로코, 인도 수역 등지에서 해조류 양식장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에너지기업 오션스 오브 에너지(Oceans of Energy)와 협력해 세계 최초로 부유식 태양광+해조류 양식장을 설치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덴마크 령 페로 제도 모습 ⓒ와일드니스 트래블 홈페이지(2023. 08. 16)
‘오션 레인포레스트’ 의 혁신
유럽의 해조류 양식기업 중에 특히 눈여겨 볼만한 곳이 하나 있다. 해조류 양식기업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션 레인 포레스트(Ocean Rainforest)다. 이 회사는 유럽에서 해조류 바람이 불기 전인 2007년에 덴마크령이 페로 제도에서 문을 열었다.* 설립 당시 꿈은 매우 소박했다. 바다에서 해조류를 키우면 이산화탄소도 흡수하고, 기후 변화도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현하자는 것이 창업이념이었다. 2013년에 첫 양식장 면허를 받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방식으로 해조류 양식을 시작했다. 자연환경에 최적화된 해조류를 키우기 위해 연구 개발과 기술 혁신에 초점을 뒀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른바, ‘매크로 조류 양식시설(Macro Algae Cultivation Rig, MACR)이다. 시제품을 페로 제도 해조류 양식장에 적용하여 성공한 이후 현재 모든 양식에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가 유럽에서 해조류 양식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션 레인포레스트가 페로 제도에 자리 잡은 것은 이곳의 수온이 11∼15도 정도이고, 북대서양에 위치하고 있어 해조류를 양식하는 데 최적의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임.
오션 레인포레스트의 해조류 채취선박 ⓒ오션 레인포레스트 홈페이지(2023. 08. 16)
‘오션 레인포레스트’ 의 확장
이 회사가 돋보이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세계야생기금(WWF)과 협업을 통해 확보했다는 점이다. 2020년에 오션 레인포레스트가 기업 스케일업에 필요한 자금 150만 달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WWF가 85만 달러를 댔다. 글로벌 환경단체가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운영자금을 기반으로 해조류 채취 선박을 건조하고, 해조류 건조 및 가공시설을 지었다. 연구개발사업 참여도 활발하다. 2020년에 미국 에너지부가 발주한 첨단 연구개발 프로젝트(Energy<(ARPA-E>)에 응찰해 이 회사가 개발한 이른바 매크로 시스템을 현장 적용하는 사업을 따냈다. 2022년에는 글로벌 19개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900만 달러에 달하는 유럽연합 시마크 프로젝트(SeaMark project)를 수주했다. 이 사업은 유럽연합 전 지역의 해조류 양식 및 활용 등에 초점을 맞춘 사업이다.
인도네시아 해조류 산업협회 홈페이지 ⓒ인도네시아 시위드 홈페이지(2023. 08. 16)
해조류 산업화가 관건이다.
유럽에서 해조류가 뜨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우선 커졌고, 글로벌 탈탄소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해조류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권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서다. 유럽의 경우 해조류 산업은 이제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다. 앞으로 개발할 비즈니스 영역이 크다는 의미다. 시장을 선점한 오션 레인포레스트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유럽은 해조류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장 수요가 많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해외에서 수입하는 해조류 양이 상당하다. 하나 흥미 있는 점은 최근 인도네시아가 해조류 산업을 자국의 핵심 성장산업으로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플랫폼까지 만들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조류는 미역국과 김 수출에 주로 초점에 맞춰져 있다.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하는 산업화 전략이 필요하다. 시장이 변하고,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재선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