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무인도를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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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쓰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유인도였다가 무인도가 된 섬의 전설에 대해 찍고 싶은 방송작가, 무인도에서 촬영을 하고 싶어 하는 영화제작사, 생존 콘텐츠를 찍고 싶은 많은 유튜버, 대형 OTT 프로그램 관계자까지 갈 만한 무인도를 추천해달라는 연락이 많다. 인류를 떨게 한 코로나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뒤 이러한 연락은 더욱 많아졌다. 그렇게 한 번 무인도를 소개해주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배는 몇 명까지 탈 수 있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무엇을 가져가면 좋을지’ 등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간혹 퇴직 후 정말 조용한 섬에서 살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냐는 내용이나 무인도를 구매 혹은 판매하고 싶은데 소개해달라는 분들도 있다. 코로나가 한참일 때에는 무인도로 가서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있다가 오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갑자기 무인도를 찾기 시작한 것일까.
방송을 비롯한 영상 관계자들이 무인도를 찾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조금씩 이유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무인도는 ‘자극적이고 색다른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소에서의 영상 제작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법한 콘텐츠가 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팔라완 코론의 부수앙가 근처 무인도에서 호주의 제작사가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을 찍고 있고, 태국 코쿳섬 주변 무인도에서는 미국의 제작사가 영상을 촬영 중이다.
해양수산부 무인도서종합정보제공 홈페이지 ⓒ무인도서종합정보제공 홈페이지
무인도는 다른 장소에 비해 정보가 많지 않고 사람들이 가기 힘든 곳이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다녀온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이것저것 물어볼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가 무인도의 위치, 간략한 정보 등이 담긴 <무인도서종합정보제공>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이달의 무인도서>를 소개, 발표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알지는 못한다. 때문에 무인도에서 촬영을 하다가 관련 법규나 제도에 대한 무지로 무허가 세트장을 설치하거나 절대 보전 무인도서 혹은 특정도서에 입도하였다가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무인도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준수해야 할 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떠한 행위까지가 가능한지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작하여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무인도 내 무허가 세트장 ⓒ연합뉴스, 2023.05.31.
실제로 무인도가 가지는 여러 잠재적 가치들을 알리고, 하나의 ‘대안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부터 5개년 계획으로 수립한 <제2차 해양수산과학기술 육성 기본계획>수립 단계에서도 무인도 활성화에 대한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무인도서의 접근성과 이용자 편의를 높이기 위해 화장실, 간이휴게소, 도서 탐방센터와 임시 정박시설 등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해양수산개발원에서도 <무인도서 해양주권 강화와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연구한 바 있다. 이처럼 무인도에 대한 활성화 방안이 논의되는 이유는 무인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바람직한 이용을 유도하고자 함이다. 이는 섬 인구 감소에 따른 무인도화와 영토주권과도 궤를 같이한다.
무인도 활성화 관련 해양수산부 보도자료 ⓒ해양수산부 보도자료, 2020.07.22.
퇴직 후 조용한 섬에서 살고 싶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몇몇 지자체에서 논의하였던 무인도화 방지화 관련 사업들이 생각난다. 5가구 미만으로 곧 무인도가 될 위기에 놓인 섬을 점검하고 이에 대해 논의를 했던 섬들을 먼저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이 하기엔 한계가 있다. ‘섬이 무인도가 되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안다. 그러나 이미 격렬비열도와 같은 사례를 겪은 우리는 알고 있다. 무인도가 가지는 안보적 가치와 방치하다시피 했던 무관심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나라 영해기점 도서 중 절반 이상이 무인도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독도라는 섬을 관리하고 기록한 것은 울릉도 주민이었다는 것에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섬의 인구가 줄어 무인도가 되고, 주변 섬들이 무인도가 되면 일어나는 연쇄적인 반응들은 위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무인도는 우리 영해권과 영토 주권 행사와 관련이 있고 우리 국토의 최전방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우 무인도를 비롯해 섬과 해양이 가지는 가치를 알아채고 일찍이 오키노토리시마와 같은 무인도를 인공적으로 조성하였고, 무인도를 비롯, 주변 섬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은가.
서해의 독도라 불리는 무인도인 격렬비열도 관련 기사 ⓒSBS, 2016.10.29.
코로나가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갈 때 연락을 주셨던 분들의 메일을 보았을 때는 전 세계 무인도를 원하는 기간과 날짜에 렌트하거나 매매할 수 있는 독일의 무인도 렌트회사와 미크로네시아에서 본 무인도여행사가 떠올랐다. 이처럼 누구나 무인도를 즐기고 경험할 수 있게 한 사례는 해외의 경우 이외에도 많다. 특히 해외의 경우 무인도를 해양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장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세계자연유산 지역으로 바다코끼리, 북극곰, 북극여우들을 볼 수 있는 무인도 코스로 브란겔섬과 얼음낚시 등의 체험을 위한 파펜베르그섬 등을 활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트레킹을 하고 주변 보호동물을 볼 수 있는 파다르섬, 만디키섬, 카리문자와섬 주변 무인도를 활용하며, 갈라파고스의 노스 세이모르섬이나 사우스팔라자섬, 핀존섬, 동티모르의 자코섬, 필리핀의 칼랑가만섬, 호주의 레이디 엘리엇섬 등도 그 예이다. 일본의 경우 무인도를 캠핑장이나 관광지, 체험학습장을 오픈하여 활용하는 사루지마, 쿠지라지마, 타지마, 가게나하지마, 류오도, 오토시마 등이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무인도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다. 캠핑장으로 활용하는 소쿠리섬이나 원시 체험을 테마로한 고흥 시호도, 유원지를 개발하고자 하였던 사렴도, 민간이 가꾼 외도가 이와 같은 경우라 할 수 있지만 이는 전체 무인도 중 일부에 불과하다.
미크로네시아 무인도 여행사가 진행하는 대상 무인도 ⓒAQUA Geo Graphic
갈라파고스 무인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회사의 홈페이지 ⓒ갈라파고스 얼터너티브 홈페이지
많은 사람이 무인도를 찾는 이유 또는 무인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의 이유는 곧 무인도가 가지는 중요한 가치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순서대로 언급한 바와 같이 관광적 측면과 안보적 중요성, 생태 환경적 가치만 보더라도 우리가 무인도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무인도는 사람이 말 그대로 살고 있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대표
국내외 무인도에서 체험/생태교육을 진행하는 무인도섬테마연구소와
매달 섬에서 해양쓰레기를 줍는 단체인 사단법인 섬즈업을 운영하고 있다.
제2차 국가해양수산과학기술 육성 기본계획에 참여하였으며,
국내외 무인도 활성화 방안 및 실태조사, 활용 사례조사, 무인도 빅데이터 조사 등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