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노르웨이 콩스버그(Kongsberg), 400년 은광(銀鑛) 마을이 글로벌 혁신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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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 마을의 탄생과 흥망성쇠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상황을 돌이켜 보면 이렇다. 1624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인조가 집권한 지 2년 차에 접어들던 해였다. 광해군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인조가 이괄의 난 때문에 야밤에 공주로 피난을 가던 그 시기였다. 그때 유라시아 대륙 건너 북유럽 노르웨이에서 은광이 터졌다. 오슬로 옆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 콩스버그(kongsberg)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콩스버그는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직할 영지였다. 마을 이름도 크리스티앙 4세가 하사한 콩스(king)버그(mountain), 즉, 왕의 산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이곳에 은광이 개발되면서 화폐 주조창 등이 들어서고, 인근 지역 독일 등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은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기술들이 속속 개발됐다. 은광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생태계도 만들어졌다. 은광 산업이 절정기에 올랐던 18세기 후반 이곳 인구는 1만 2천 명까지 늘었다.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GNP 10%를 차지할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영화는 끝없이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19세기 들어 은광은 속 빈 강정으로 변했다. 경제 빙하기가 찾아오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도시는 파산공포에 내몰렸다.
콩스버그 홈페이지 초기 화면 ⓒ콩스버그 홈페이지 검색(2023. 9. 15)
빅테크 기업, 콩스버그의 출현
1814년 3월, 광산 감독관이 공장 하나를 세우게 된다. 도시 이름을 그대로 붙인 ‘콩스버그 무기 공장’이었다. 오늘날 200년 장수기업으로 성장한 콩스버그 그룹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 회사는 해양플랜트와 방산무기 생산, 우주·항공산업, 디지털 분야 등 4가지 사업군을 중심으로 장비와 부품,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최첨단 기술·지식 집약기업이다. 이런 콩스버그가 최근 해양 분야에서 가장 핫한 기업의 하나로 떠올랐다. 2020년 2월 13일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선박을 상업적으로 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노르웨이 연안 페리항로 서비스에 들어갔다. 콩스버그 해양(Kongsberg Maritime)과 페리 선사, 노르웨이 해운당국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격찬했다. 특히 이 선박이 관심을 끈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해운·조선업계가 무인·자율운항 선박을 개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콩스버그가 첫 테이프를 끊었기 때문이다.
콩스버그가 출범한 초창기 모습자료 ⓒ콩스버그 홈페이지 검색(2023. 9. 15)
기업 핵심역량의 선택과 집중
첨단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는 콩스버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전문가들은 콩스버그 창업 200년의 경영 혁신 노하우와 기업가 정신, 그리고 미래 산업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전략에서 찾는다. 창업 초기에는 은을 채굴하는 기술을 무기 생산으로 돌리면서 도시의 성장 패러다임을 바꿨다. 자체 개발한 소총을 국방부에 납품하면서 산업 전환에 성공한 콩스버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글로벌 무기 시장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다. 종전 이후에는 군수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민간 시장에서 성장 모델을 찾았다. 스패너, 플라이어 등을 만들면서 민간 공구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등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그 뒤에도 자동차 시장이 열리자, 차축과 차량·선박 부품, 다리미, 재봉틀 등을 생산하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콩스버그에서 최근 개발한 자율운항 연안 화물선 ⓒ콩스버그 홈페이지 검색(2023. 9. 15)
콩스버그 그룹 200년 DNA는?
콩스버그가 성장의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1987년 이후 1997년까지 10년 동안이다. 1987년에 노르웨이 정부가 보유 주식을 매각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콩스버그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에는 콩스버그 해양까지 인수하게 되자 그룹의 주력사업이 해양과 군수물자 생산, 항공·우주산업으로 짜여 졌다. 2016년 들어 콩스버그 디지털을 설립하고, 2019년에 롤스로이스 해양 부문을 인수한 것은 신성장 모델을 찾기 위한 선제적인 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롤스로이스 해양 사업 인수는 콩스버그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해운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콩스버그는 최근에 해양 디지털 부문과¹ 탈탄소 기술 및 무인 무기 시스템 개발이라는 신산업 쪽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신기술 개발과 신시장 개척이라는 콩스버그의 200년 경영 DNA가 그렇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콩스버그가 자국이 필요로 하는 무기 생산에 눈을 돌려 기업의 성장 기틀을 만든 것이나 산업 핵심기술을 개발하여 글로벌 첨단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영 전략은 1814년 창업 당시나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흐름을 미리 예측하고, 시대 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정답이다. 400년 광산 도시 콩스버그와 200년 장수기업 콩스버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교훈이다.
1. 콩스버그는 최근 해양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핫 이슈로 등장하자 최근에 선박 운항과 관련한 데이터 및 기술, 솔루션 등을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인 콩스버그 마겟 플레이스(콩스버그 디지털에서 운영)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음.
콩스버그 마켓플레이스 홈페이지 초기 화면 ⓒ콩스버그 홈페이지 검색(2023. 9. 15)
최재선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