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생선 껍질 하나로 유니콘 기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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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해양바이오 기업 케레시스 성공 스토리
수산 부산물의 처리와 활용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바다에서 잡히는 수산물의 35%쯤은 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산물을 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혼획이나 부수 어획 물량은 제외한 수치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는 수산 부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하거나 운송의 어려움 또는 경제성이 없어서다. 여기서 말하는 수산 부산물은 ‘수산물의 포획ㆍ채취ㆍ양식ㆍ가공ㆍ판매 등의 과정에서 기본 생산물 외에 부수적으로 발생한 뼈, 지느러미, 내장, 껍질 등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균 109만 톤의 수산 부산물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19.5%만 재활용될 뿐 나머지는 폐기물로 그대로 버려진다.
케레시스 홈페이지 초기 화면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수산 부산물 활용에 눈 뜨다
수산 부산물은 천연 바이오 소재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의료산업에서 활용도가 크고, 부가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건강 보조식품 개발 등 활용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최근에는 Zero-Waste 캠페인과 함께 수산물 100% 활용 사업이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가 아이슬란드다. 대서양 대구가 어업기반의 거의 대부분인 아이슬란드의 경우, 수산 부산물 제로화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 95%까지 활용하는 대구를 해양클러스터 기관과 기업·전문가 등과의 협력을 통해 100%를 이용하는, 이른바 100% 피시(Fish 100%)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이 가운데, 북극 지역의 대표적인 수산물인 대구 부산물을 바이오산업군으로 성장·발전시킨 기업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북서쪽 끝 도시 이사표로르(Ísafjörður)에 본사를 두고 있는 케레시스(Kerecis)가 장본인이다.
케레시스 본사 위치와 지역 항만 ⓒ위키피디아(https://en.wikipedia.org/wiki/Kerecis)
생선 껍질을 상처 치료제로
이 회사는 캐나다의 Good Fish, 베트남의 VNF와 함께 수산 부산물의 고부가가치화에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손상되지 않은 생선 껍질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하여 상용화했다. 개발한 상처 피복제는 당뇨병, 정맥, 외상은 물론 수술 부위를 포함한 상처, 화상, 기타 복잡한 급성 및 만성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케레시스가 어피(대서양 대구 껍질)에 관심을 둔 이유가 있다. 우선 사람의 피부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고, 임상이나 환자에게 사용하는데 문화적이나 종교적인 장벽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이점도 있다. 사용하기 쉽고, 두꺼운 시트로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성 질병이나 전염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케러시스 개발 상품 및 설립자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정부와 전문가 협업시스템
케레시스는 2007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의료기기 제조와 판매 사업을 하던 페트람 시구르욘슨(Fertram Sigurjonsson)이 창업했다. 그는 이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다른 회사에서 인체 조직 복구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등 풍부한 전문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오철홍 박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대학교 화학과 교수인 아버지(Sigurjon N. Olafsson)와 생명공학 엔지니어인 아내, 그리고 전에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동료의사 등과 케레시스를 설립했다고 한다.
2009년에 아이슬란드 정부 연구기관(Matis)의 지원으로 첫 시제품을 개발했다. 2013년에는 상처 치료용으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고, 시판에 나서는 등 상용화를 추진했다. 2016년과 2019년에는 각각 생선 껍질 기반 피부 치료제인 Omega3 Wound와 Omega3 SurgiBind에 대해 FDA 승인을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케레시스에서 개발한 상처 치료제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아이슬란드 첫 유니콘 기업
그런 다음 2019년에 스위스 생명과학회사인 파이토슈티컬(Phytoceuticals AG)을 자회사로 인수하면서 기업의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올해 7월에 글로벌 100대 의료기기 기업에 들어 있는 덴마크의 콜로플라스트(Coloplast)1)에 전격 매각됐다. 인수 금액은 13억 달러였다.
여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인수가격 가운데, 12억 달러는 현찰로 지급됐다는 점이다. 콜로플라스트는 인수 당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케레시스는 2022/23 회계연도에 약 5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2025/26까지 연평균 약 30%의 강력한 성장 궤도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콜로플라스트의 강력한 마케팅과 지원이 더 해질 경우 성장 속도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찰을 그렇게 많이 쏟아부어도 수지가 맞는 장사라는 뜻이다.
1)비뇨기과, 요실금 및 상처 치료와 관련된 의료기기 및 서비스를 개발, 제조 및 판매하는 덴마크 다국적 기업으로 1957년에 설립되었으며, 근로자 수는 2022년 기준으로 1만 2500명임. 우리나라에 콜로플라스트 코리아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음.
케레시스 제품을 활용한 치료과정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좌) 대서양 대구 껍질 조직 / (우) 인체 피부 조직 ⓒ위키피디아 검색자료
케레시스 본사가 있는 아이슬란드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스타트업 성장과정 그대로
케레시스의 성장 스토리를 보면, 스타덤에 오른 스타트업의 궤적을 그대로 따랐다는 분석이다. 지속적인 시리즈 투자유치와 스케일 업, 그리고 데스밸리를 거치고, 고비마다 전문가를 영입하여 위기를 헤쳐나갔다. 즉, 창업 2년째인 2009년 1월에 아이슬란드 기술개발기금(Technology Development Fund)의 지원을 받아 시제품을 개발한 뒤 2009년 6월에도 정부 지원으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1년 뒤에는 정부 소유 펀드(New Business Venture Fund)와 함께 시드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 같은 지원을 바탕으로 2014년에 개발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끝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와 함께 워싱톤에 영업·마케팅 본사를 두면서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진출 첫해에 미국에서 거둬들인 매출액이 100만 달러를 넘었다. 쾌조의 스타트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받아 2020년에 총 2100만 달러에 달하는 시리즈 C 라운드 펀딩을 성사시켰다. 2022년 7월에는 1억 달러의 시리즈 D 펀딩을 완료했다. 그 당시 기업가치가 6억 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됐다. 시리즈 D 투자의 경우 보수적인 투자가문으로 알려진 레고 브랜드 소유기업 커크비(Kirkbi)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성장 가능성을 그만큼 높게 봤다는 해석이 나왔다.
케레시스는 지난해 8500만 달러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 7월에 덴마크의 콜로플라스트에 전격적으로 인수됐다. 앞으로 상장을 앞둔 케레시스의 몸값이 어느 정도 치솟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케레시스의 사회 봉사 활동(해변정화 사업)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적극적인 사회 공헌 활동
이 회사가 성장과 관련하여 또 하나 돋보이는 대목은 사회 공헌 활동 등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등장한 ESG를 적극 실천하고 있는 점이다. 산불 등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에게 화상 치료제품(Kerecis GraftGuide)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어서다. 케레시스는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과 2019년 뉴질랜드 화이트 아일랜드 화산 폭발 피해자들에게 화상 제품을 기부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8월에는 하와이 마우이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자 치료용으로 대량의 의약품을 지원했다.
이와는 별도로 자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케레시스 케어 프로그램’이다.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화상 환자 치료를 지원하는 사업. 아이슬란드 외무부와 이집트 자선 병원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카이로 프로젝트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소아 화상 병동에 케레시스 제품을 제공하고 치료를 돕는 카불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케레시스는 창업 15년 만에 수산 부산물인 대구 껍질 하나로 글로벌 해양 바이오 역사를 다시 썼다. 한정된 자원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레시스 케어 서비스 프로그램 ⓒ케레시스 홈페이지(https://www.kerecis.com)
최재선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