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폐어구 순환경제 사례와 자원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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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어구 문제와 관리 정책의 한계
폐어구는 해양환경과 어업에 있어 오랜 골칫거리가 되어 왔다. 약 4만 4천 톤에 이르는 폐어구의 양이 해마다 바다에 유실·침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이렇게 바다에 떠돌거나 쌓여가고 있는 폐어구는 해양 생태계 악화, 어획량 손실 등 관련 피해 추정 금액만 하더라도 약 3,8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1) 또한, 해상에 버려진 폐그물·폐로프는 선박 프로펠러에 감기거나 얽히게 되어 엔진을 손상시키거나 오작동을 일으켜 선박이 바다 위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드는 해양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2)
폐어구 문제의 심각성 인식한 정부는 그 동안 폐어구 인양사업 및 수매사업, 어장 정화사업 등을 통해 폐어구 문제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최근까지 폐어구에 대한 정부 정책사업은 거의 대부분이 ‘수거’에 집중되고 있어, 그 이후를 고려한 폐어구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상에서 수거된 폐어구는 점차 어촌·연안지역에 쌓여가고 있고, 이렇게 육상에서 방치되고 있는 폐어구는 누가 이를 처리·처분해야 하는지 주체가 불분명한 채 심한 악취 발생, 경관 훼손 및 폐어구 처리비용에 대한 책임 문제 등 다양한 환경·사회적 현안이 연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1)해양수산부 보도자료(2016. 12.12)
2)심성현 · 이정삼 · 고동훈(2020), 『생분해성 어구 사용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폐기물 관리방안으로서의 순환경제 부상
한편 사회 전반에 있어 산업·생활폐기물 저감과 동시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중장기 방안으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의 개념이 부상해 왔다. 이 개념은 1990년 데이비드 피어스(David Pearce)와 케리 터너(R. Kerry Turner)의 저서인 『천연자원과 환경의 경제학(Economics of Natural Resources and the Environment)』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순환경제 개념도 Ⓒ고동훈 외(2021),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어업폐기물의 자원화 방안 연구
이후 순환경제의 개념은 지금껏 많은 연구를 통해 정립되어 왔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순환경제의 개념은 ‘생산-소비-폐기’의 선형적인 물질흐름이 아니라 경제계에 투입된 물질이 폐기되지 않고 유용한 자원으로 반복 사용되는 경제 시스템을 의미한다.3) 우리나라에서는 순환경제란 용어보다 ‘자원순환’이란 용어를 더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이 둘의 개념이 각각 그 의미에 있어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폐기물을 ‘자원’으로 간주하는 순환경제는 플랫폼 구축 및 가치창출 모델 개발을 통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규제 강화 중심의 쓰레기 문제 해결이 아닌 시장·산업의 관점에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안으로 자원저감, 환경오염 개선, 신산업·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이소라 외(2019),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플라스틱 관리전략 연구」, 한국환경연구원
폐어구의 순환경제 사례: 국외
재활용을 기반으로 한 폐어구의 순환경제 구축은 국내외 업계와 연구기관을 통해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어 왔다. 먼저 국외 주요사례를 살펴보면, 명품시계 제조사 ‘율리스 나르덴’은 바다에 버려진 폐어망을 사용해 ‘다이버 넷(Diver Net)’으로 알려진 시계를 출시한 바 있다. 율리스 나르덴은 과거 버려진 낚시 그물을 이용해 시계의 스트랩과 상자를 제조해 선보인 바 있지만, 시계를 제작해 출시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폐어망을 활용한 명품 시계 Ⓒ고동훈 외(2021),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어업폐기물의 자원화 방안 연구
아디다스(Adidas) 또한 폐어구 소재를 자사의 신발 제품 등에 활용함으로써 순환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아디다스는 2020년부터 테스트를 시작한 100% 재활용 가능 러닝화 “퓨처크래프트 루프”를 선보인 바 있으며, 이 제품은 밑창에서부터 신발 끈에 이르기까지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가 접착제 없이 제조되어 자사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폐기물이 발생이 전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폐어구를 재활용한 신발 Ⓒ고동훈 외(2021),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어업폐기물의 자원화 방안 연구
폐어구의 순환경제 사례: 국내
다음으로 국내 사례의 경우, 수거 중심의 폐어구 관리에 대한 대안으로서 부경대학교에서는 건물의 외벽마감재 및 벤치·데크 등에 폐어구가 재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부경대학교는 폐어구가 기본적으로 로프, 망지(그물), 뜸, 발돌 등으로 구성되는 구조를 파악하여. 타면 공정 및 반용융 공정의 작업 과정을 거쳐 외벽마감재와 옥외시설용 벤치·데크를 개발한 바 있다.
폐어구를 활용한 건설 및 옥외시설 자재 제작 주요 공정 Ⓒ고동훈 외(2021),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어업폐기물의 자원화 방안 연구
삼성전자 또한 일명 ‘유령 그물(Ghost nets)’이라고 불리는 폐어망을 스마트폰에 사용 가능한 소재로 개발한 바 있다. 2022년 삼성전자는 생산부터 사용, 폐기에 이르는 자사의 제품 수명 주기와 사업 운영 전반에 걸쳐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고자 ‘지구를 위한 갤럭시(Galaxy for the Planet)’ 선언함과 동시에 수거된 폐어망을 스마트폰 부품의 소재로 재활용함으로써 폐어구가 해양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였다. 향후 해양 폐기물을 재활용한 소재를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자사의 사업부 전 라인업으로 확대·적용하며, PCM(post-consumer materials)을 재활용한 플라스틱과 재활용 종이 등 친환경 소재 사용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을 표명한 바 있다.
폐그물 재활용을 통한 삼성 스마트폰 소재 홍보 자료
Ⓒ시사위크,https://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790
민간·시장이 주도하는 폐어구 순환경제를 위해 정부의 기반 조성과 지원 필요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거 중심의 폐어구 관리정책은 수산자원을 회복하고, 해양환경·생태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 단기적인 방안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수거 이후의 단계인 폐어구 집하, (전)처리 및 재활용 등에 대한 사항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해상에서 수거되어 어촌·연안지역에 쌓여 갈 폐어구는 처리·처분 주체의 역할문제와 한정된 예산투입 등에 끊임없는 마찰과 대안 마련을 반복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순환경제 사례가 보여주듯이 육상에 쌓여진 폐어구가 재활용을 통해 유용한 자원으로 탈바꿈 한다면, 폐어구는 무엇보다도 업계의 상품 생산을 위한 가치 있는 자원으로 전환되어, 수거에서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폐어구 전 주기 관리에서 민간(업계)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친환경산업으로 발전할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폐어구를 재활용한 소재를 토대로 시계, 신발 및 산업재 등의 제품 생산에 대해 앞에서 소개된 국내외 사례는 궁극적으로 폐어구 재활용 원료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나타날 것을 시사한다. 육상 폐기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전처리 비용이 요구되는 폐어구의 특성상 타제품의 생산을 위해 해당 폐기물을 필요로 하는 업계의 참여 없이는, 결국 정부가 끊임없이 어업폐기물을 수거하는 데 주력하고, 매립할 장소를 찾기 위해 또다시 예산을 투자해야 하는 비효율적 관리체계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폐어구 관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폐기물이 가치 있는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정부는 순환경제 구축 기반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성된 시장에 업계가 참여하여 폐어구가 타제품의 생산을 위한 원료로서 거래가 되도록 시장(업계)이 주도하는 순환경제가 조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육·해상의 폐어구 총량 자체를 줄여나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즉,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과 시장이 주도하는 순환경제가 조성될 수 있도록 정부는 최소한의 집하시설 및 전처리 기반을 구축하고, 업계는 이를 토대로 폐기물을 구매·재활용한 뒤 타제품의 원료로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민간과 시장이 주도하는 순환경제 구축 기반 조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무엇보다도 ‘폐어구 순환경제 플랫폼 구축 시범사업’을 제언하고자 한다.
어업폐기물 순환경제 플랫폼 구축 시범사업 구상도 Ⓒ고동훈 외(2021),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어업폐기물의 자원화 방안 연구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폐어구의 자원화를 이루기 위해선 시범사업을 통해 해당 폐기물이 재활용된 원료가 시장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폐어구의 자원화가 순조로이 진행되기 위해선 먼저 시범사업을 통해 폐어구 재활용 원료의 가격이 기존 경쟁원료의 가격보다 높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가격 경쟁력은 비용 절감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비용 절감은 또한 폐어구 발생에서 집하, 수거·전처리, 가공 및 원료 생산에 이르기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각 단계에서 투입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연구와 전략 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집하 단계에서 필요한 부지 등의 기반시설은 정부 지원하에 공공용지를 확보하고, 수거·전처리는 선별·파쇄·해체·세척 등의 작업에서 자동화를 통해 투입되는 노동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과 운영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범사업을 통해 폐어구 재활용 과정의 개별 단계에서 관련 처리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면, 폐어구가 재활용된 원료의 가격은 경쟁 원료의 가격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며, 기업이 폐어구 재활용 원료를 구매하는데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이는 결국 해당 원료에 대한 기업의 수요를 창출시켜 민간과 시장이 주도하는 순환경제가 구축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고동훈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식품· 신산업연구실장
FRP 폐어선 관리 실태와 재활용 기술 경제우위에 관한 연구 논문을 비롯하여
해양쓰레기의 순환경제 시스템과 수산분야 블록체인 기술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