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조선제조 강국에서 해양 서비스 중심이 된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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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은 조선 제조 강국으로 세계를 호령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신흥 조선제조 강국에 밀려 그 주도권을 빼앗기더니 결국 세계 조선 강국의 자리를 그들에게 내주었다. 유명한 ‘말뫼의 눈물’은 스웨덴 말뫼시에 있던 골리앗 크레인이 한국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팔려 나가던 날 말뫼시 주민들의 슬픈 상황을 묘사했던 기사 문구이다. 그랬던 북유럽의 국가들은 이후 조선 제조 대신 해양 서비스 강국으로 거듭나면서 당시 비극을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돌파구를 찾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양 서비스 중심지로 성장한 노르웨이 오슬로이다. 오슬로는 해양 강국 노르웨이의 수도이자 대표적인 항만도시이다. 오슬로의 도시 면적은 454㎢로 부산시 면적의 60% 정도이며 인구는 69만 명 정도로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그러나 생산가능 인구는 전체 71.6%, 고령화율 11.2%로 유럽에서도 가장 젊은 도시 축에 드는 곳이다. 오슬로에 거주하는 청년층 인구 중 다수는 자국민이 아니라 유럽 타지역에서 일자리를 위해 유입된 지식층 인구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노르웨이 남부 해안에 위치한 오슬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사이의 스카게라크(Skagerrak) 해협을 통한 발트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통해 발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슬로는 따뜻한 북대서양 해류 덕분에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부동항(不凍港) 지위를 가지고 바이킹의 해양 진출 기지, 유럽인의 북극 탐험 교두보, 한자동맹의 북부 무역거점, 근대 북해 자원개발 기지, 수산업 전진기지 그리고 조선 제조 강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오슬로는 20세기 초 영국의 조선업 쇠퇴를 기회로 1980년대까지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산업의 비교우위를 동북아 국가들한테 넘겨주기 전까지 세계 조선계 제조 강자였었다.
오슬로 항과 수변 공간 전경 ⓒCLIPARTKOREA
해상을 통해 교류가 많았던 과거 역사 덕분에 오슬로는 노르웨이 도시 중 가장 개방적이고 젊은 도시이다. 2023년 1월에 발표한 Menon Economics의 세계 50대 해양도시 중 7위를 차지한 것도 이 덕분이다. 오슬로는 해양기술 2위, 해양 금융 4위, 도시 매력성 5위를 차지해서 전체 7위를 차지했다. 반면 부산은 해양기술 분야만 5위권이었다. 오슬로는 조선제조 강국에서 밀려난 이후 선박금융을 육성하였고 선박펀드 조세 혜택 부여, 국제선박치적제도 적용 등을 통해 조선 제조업 대신 해양 서비스업으로 산업구조를 탈바꿈하면서 해운 관련 서비스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였다. 2000년 해운거래소 설립, 전 세계 선박의 16.5%가 등록한 세계 3대 선급 DNV(Det Norske Veritas), 세계 2위 선박금융 전문은행 DNB NOR 등 세계 30대 선박금융 은행 중 10%가 오슬로 일대에서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1) 이는 세계 상위권 경제 선진국인 노르웨이 GDP의 20%를 오슬로가 담당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오슬로는 조선 제조업과 함께 항만물류기능도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났으나 국가와 도시의 기본적인 운영을 위해 매년 6,000척 이상 선박과 6~700만 톤 이상 화물, 600만 이상 승객들이 이용하는 중요한 물류와 여객 거점 역할을 하면서 배후의 해양 서비스 공간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1)재구성: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세계해양도시를 만나다. 2023. p.95
발췌: Menon Economics, THE LEADING MARITIME CITIES OF THE WORLD 2O22, A Menon Economics and DNV Publication, 2023.1
오슬로는 공간 진화 측면에서 한때 우리나라의 제조 수출거점이자 조선제조 거점이었던 부산과 유사한 성장패턴을 가지고 있다. 과거 오슬로의 조선제조 거점이었고 오슬로항 인접한 아케르브뤼게(Aker Brygge)와 튜브홀멘(Tjuvholmen) 지역을 재개발하여 문화, 상업, 여가 공간으로 전환해 시민들이 해양공간을 다양한 관점에서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한편, 해양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고자 오슬로 도시 외곽 포스크닝파켄에는 해양과학지구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해양금융, 해양 기술, 해양 자원 개발, 해양 물류 등 해양 서비스와 관련한 과학기술의 중심지로 육성하여 구도심과 신도심의 역할을 구분하고 상호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당 해양과학 지구는 50개 이상의 전문 클러스터, 수백 개의 스타트업 기업이 입주해서 다양한 기술 개발과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다. 2)
2)재구성: 전게서, 2023. p.97
오슬로는 고도의 해양장비산업을 기반으로 해양금융, 해양지식 산업을 융합 성장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해양 디지털과 환경 산업에 더욱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노르웨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비료회사인 야라 인터내셔널(Yara International)와 콩스베르그(Kongsberg)사가 2021년 11월 세계 최초 자율 운행 선박이자 Net Zero를 지향하는 선박 ‘야라 비르셸란호(YARA Birkeland)’를 시험 운행한 바가 있다. 오슬로는 해양 서비스 경쟁력을 기반으로 다시 미래 디지털·친환경 선박 제조와 기술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세계 최초 자율운항 전기 컨테이너선 야라 비르셸란호 ⓒYara International ASA
야라 비르셸란호의 전기 화물 솔루션 ⓒYara International ASA
최근 우리나라 정부는 민간 중심 경제성장을 높이기 위해 수출에 주력을 다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자체가 무역 의존도가 80%를 훨씬 넘고 있어 중국, 일본, 독일 등의 30%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 상품 수출은 세계 6위 수준인 반면, 서비스 수출은 세계 15위로 격차가 크다. 또한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서비스 수출의 비중이 15% 불과한 게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부산은 상품 수출과 서비스 수출 모두 우리나라의 바닥권에 있다. 글로벌 해양 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의 현실이다. 부산은 이미 비용 경쟁력에서 격차가 큰 해양 관련 제조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해양 서비스의 중심으로 성장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부산이 지향하는 해양 서비스 중심도시에 대한 노력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선박금융 기업 모임인 캐피탈 링크에 중국, 일본, 싱가포르 금융기업은 다 있으나 부산 소재 금융은 물론 우리나라 금융사는 없다. 세계 친환경 선박 금융 프로토콜인 포세이돈(Poseidon) 협약에도 우리나라 금융사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제 부산이 우리나라 해양 서비스 산업을 일으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데 오슬로 사례를 거울로 삼아 과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